20세기 세계에서 버림받은 유적 9

저주받은곳 하면, 버려진 오래된집, 미완성된 건물, 방치된 실험기구등 사연과 역사가 있는 유적은 세계 여러곳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을때의 이야기도 전해져 오죠. 지금부터 소개해드릴 10곳은 20세기부터 전해저 내려온 비극적인 스토리를 간직한 장소들입니다.

 


9. 히틀러의 할리우드 아파트 (미국)

1930 년대에 미국의 나치 추종자인 셔츠 당 (Silver Shirts)은 히틀러의 세계 통일을 확신하고 히틀러에게 할리우드의 화려한 아파트에서 승리선언을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그룹은 백만장자와 광산의 상속인 제시 머피등 상당한 재력가들이 리더 였으며, 당시 400 만 달러 (지금 수준으로는 6 천 600 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카우보이 영화의 전설적인 스타인 윌 로저스의 집을 매입했습니다. 실버 셔츠 당원은 히틀러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이 집을 이용하며 정치 활동에 전념하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히틀러를 위해 최고의 것을 준비하고 싶다고 생각은 셔츠 당은 이집에 방공 대피소와 무장 경비원 디젤 발전소, 그리고 체육관에 수영장, 목장까지 마련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이 계획은 진주만을 공격당한 후, FBI가 이 집을 포위하고 50 여명의 실버 셔츠 당원이 체포 됨으로서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중 한곳인 이곳은 낙서 와 함께 방치되었다가 2012 년에 건물을 철거하고 피크닉 장소로 만들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8. 그림에 쓴 낙원, 포드랜디아 (브라질)

포드 자동차 회사의 창립자 헨리 포드는 회사가 미국의 제조업과 자동차 시장을 제패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뿐이 아니라 전세계의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1928 년 포드는 큰 돈을 들여 아마존의 오지에 고무 나무 농장을 세웠습니다.

포드는 이전까지 고무 제조를 말레이시아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포드의 운영방식인 수직 계열에 위배된다고 생각했기에 나온 발상이었습니다.

헨리 포드는 미국식 집과 회사식당 그리고 미국식 음식을 제공하며 미국신 문화를 즐기라고 강요했습니다. 또한 술까지 못마시게하며 직원들과의 사이가 멀어졌고, 근본적으로 이곳은 포드가 필요한 고무나무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은곳이었기에 1945 년 포드가 2 억 달러를 들인 포드란디아는 브라질 정부에 25 만 달러에 팔고 철수하게 됩니다. 이 미국식의 유령 도시는 지금도 여전히 정글의 안쪽에 자리하고있습니다.


7. 바베이도스 우주 포대 마틀렛

카리브해 서인도 제도의 바베이도스에는 HARP 계획에 따라 설치된 냉전시대의 슈퍼 건이 누워있습니다. HARP 계획은 캐나다와 미국이 함께 저렴한 방법으로 투사체를 우주로 쏘아 올리는 계획이었습니다.

쏘아 올리는 투사체는 궁극적으로 무기였지만, 초기에는 연구목적으로 금속채프, 화학작용으로 발생되는 연기나 기상에 필요한 풍선등이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군사적인 자금투입이 어려워졌고 마틀렛의 연구개발은 중단되었습니다.


6. 알레이스터 크로울리의 흑마술사원 (이탈리아)

알레이스터 크로울리는 영국의 수수께끼로 가득 찬 마술사로 자신을 '위대한 야수 666 "라고 자칭 해,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에 '세계 최악의 괴짜"라고 대서 특필 된 20세기 최후의 마법사 입니다. 

크로울리는 맥주 양조장을 하는 부유한 부모밑에서 태어난 양성애자이며 오카루티스토였습니다. 자신은 흑마술의 지도자로서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이끌 선지자라고 자칭하는 괴짜였죠. 동방 기사단과 실버 성단 등을 이끌었으며, 이후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시칠리아 체팔루에 크로울리 사원을 지었습니다.


사원은 마술적 의식을 위해 사용되었는데, 크로울리 사원의 벽에 직접 성적의식의 그림과 악마와마녀의 그림 등을 그리며 퇴폐적 주술을 의 성지였습니다.

1922 년 라울 라부디 라고 명명 된 한 제자가 고양이의 피를 마시고 사망하자 제자의 아내가 런던으로 돌아가 신문사에 남편이 크로울리의 흑마술에 의해 살해 됐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전부터 흑마술에 반대했던 이탈리아의 정치인 베니토 무솔리니는 사원을 문닫게 하고 크로울리를 추방했습니다. 크로울리가 떠나고 난후 폐허가 된 사원은 크로울리가 그리거나 만들어었던 엽기적인 인테리어가 드러냈고 이탈리아 정부는 이 건물을 팔려고했지만, 구매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5. 샤를드골 공항에게 저주받은 마을 구생빌르 (프랑스)

구생빌르는 샤를드골 공항 가까이에 있는 파리 교외의 작은 마을입니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 1973 년 여름 소련의 새로운 초음속 비행기가 모터쇼 중에 추락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1백여채의 가옥을 파괴하고 8 명의 마을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사고는 구생빌르의 마을이 유령마을이 되는 전초가 됩니다.

사고로부터 1 년 후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이 개항했는데 샤를드골 공항에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경로가 이마을이었던거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행기가 굉음을 울리고, 가옥을 흔들자 주민들은 불면증에 시달렸고 공항이 개항한지 1 년 후, 대부분의 주민은 이 마을을 버리고 떠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빈 유령마을이 되었습니다.


4. 소련의 비밀연구시설 (보즈로지데니에 섬)

중앙 아시아 아랄해의 보즈로지데니에 섬은 1948 년 소련이 비밀리에 세균 무기연구시설을 지은 섬입니다.40 년 동안이 연구소에서는 탄저균과 천연두, 토끼 질환, 동맥 전염병 등의 균이 연구되고 있었고, 대부분의 균들은 유전자 적인 조작으로 치명적인 균이었습니다.

1971 년 이 연구소에서 천연두 균이 유출되어 10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고, 1988년 소련은 이곳에서의 세균무기 계획이 국제적인 지탄을 받을위기에 직면하자 이곳의 연구들을 숨기기 위해 연구소에있는 탄저균을 물에 흘려 흙에 묻어 버립니다. 균은 지하수 를 오염시키고 이곳에서 아무도 살수없게 되자, 연구소는 폐쇄되고 방치 된 상태입니다.


3. 몬트세랫 섬의 진흙에 묻힌 마을 (영국의 속령)

카리브해에있는 몬트새랫 이라는 섬에 1989 년 태풍이 직격하여 섬의 절반 이상이 파괴됩니다. 몬세라트 섬은 재건작업에 어느정도 회복을 하는듯 했지만, 6년후 섬에서 그동안 잠자고 있던 루이스 화산이 다시 폭발합니다.


1995 년 7 월 수도 플리머스에 피난 권고가 떨어졌지만, 이 마을에 살아 돌아온 주민은 거의 없습니다. 이유는 7월 25 일에 다시 큰 폭발이 마을을 용암과 으로 묻혀 버렸기 때문이죠. 

15 년이 지난 지금, 회색으로 굳은 집지붕이나 전화 박스 윗부분만이 남아있으며, 용암이나 진흙에 삼켜 진 몬트새랫의 인구는 당시의 화산폭발로 많은인구가 감소했습니다.


2. 돈마리아노 레데스마 락손 아파트 (필리핀)

1920 년대, 설탕으로 큰 부를 축적한 돈 마리아노 레데스마 락손에게 불행의 시작은 아내의 죽음이었습니다. 와이프인 마리아는 11 번째 아이를 출산한 후 사망했는데 락손은 아내의 죽음에 슬퍼하며 아내를 위해 지은 집에 아내의 표식을 곳곳에 남기며 이 집을 국내 제일의 아름다운 저택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탈리아 풍의 저택에는 모든것이 아낌없이 투자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제 2 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일본군이 필리핀에 상륙했습니다. 아내가 죽은후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던 락손은 일본군이 저택을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집을 뺏을것을 알고, 일본군에게 주느니 차라리 없애버리겠다며, 집에 불을 붙입니다. 저택이 전소하는데 3 일이 소요되었고 불꽃의 기세가 줄어들어 꺼지고 난후엔 이집의 뼈대만 남게 되었으며, 이 뼈대는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1. 피로 물든 고도, 클리퍼 턴 섬 (프랑스 속령)

멕시코 연안 서쪽에 산호초에 둘러싸인 클리퍼턴 이라는 무인도가 있습니다. 클리퍼 턴 섬은 18세기 초 영국의 해적인 클리퍼턴이 발견하여 클리퍼턴 섬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프랑스와 멕시코가 영유권다툼을 하다가 지금은 프랑스에 귀속된 섬입니다. 지금은 무인도지만 한때 1900년대 초기 사람이 살았던 적이있습니다. 

프랑스에 귀속되기전 멕시코는 단기간이지만, 클리퍼튼 섬에 주둔지를 만들고 군대를 주둔 시켰습니다. 그 직후, 멕시코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혼돈에 휩싸인 멕시코 정부는 클리퍼튼 섬에 정기적으로 식량과 약품을 운송하는 것을 잊게되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클리퍼 튼 섬에 착륙한 미국의 배가 있었는데, 미국 선원들은 현재 멕시코 본토의 상황을 설명하고 본국에서 배가 오기는 힘들것이라며, 섬에있는 멕시코 인들에게 자신들의 배를타고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맥시코 군의  소대장이었던 레이몽은 이를 거절합니다. 멕시코 대통령이 명령하였고 자신을 이섬의 최고 책임자로 두었기 때문에 떠나지 않겠다는것이었죠. 그리고 보급함은 꼭 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보급선은 오지않았고, 1915 년 섬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영양 실조 나 괴혈병에 걸려서 죽거나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선박의 제의를 거절한 소대장 레이몽 책임을 느끼고 어느날 해상 멀리 지나가던 배를 쫓기 위해 섬에 남아있는 남성들과 함께 카누를 타고 배를 쫒았습니다. 그러나 카누가 배를 따라 잡을 수는 없었고 그와중에 카누는 바다에서 전복되어 배에 탓던 남자들은 모두 익사하고 말았죠.

1917 년 클리퍼 튼 섬에 남은 사람은 아이들과 15명의여자 그리고 단 한명의 남자 뿐이었습니다. 섬의 등대를 책임지고 있던 이 남자는 자신을 클리퍼 튼 섬의 왕으로 자칭하고 말안듣는 사람은 죽이며 여자들을 강간을 시작하게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는 오래가지 못하고, 죽은 소대장 에이먼의 미망인을 포함한 2 명의 여성이 왕을 지칭한 남자를 여러 번 찌르고 망치로 때려 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몇 시간 후에 우연히 이 섬을 지나던 미국해군에 의해생존자들은 마침내 구조 됩니다. 이 섬은 지금도 남아 있으며 현재는 프랑스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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