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우미양가의 유래 불편한 진실

예전 학창시절에 누구나 받아보았던 성적표가 있을것입니다. 엄마에게 숨기기도 하고 우리를 웃고 울리게했던 학교에서 학생을 평하하는 방식이 수 우 미 양 가 였습니다.


수우미양가 에 담긴 뜻밖에 의미들이 있습니다. 수우미양가를 한자로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秀 빼어날 수 (빼어나다)

優 넉넉할 우 (우량하다)

美 아름다울 미 (아름답다)

良 어질 양 (훌륭하다)

可 옭을 가 (옳다)

의 뜻들이죠. 하지만 이런뜻말고 다른뜻이 있다고 합니다. 수우미양가는 일본 사무라이가 잔혹한 행위를 하던 평가방식이라는거죠.


일본의 전국시대때 15~16세기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허리에 대바구니를 메달고 다닙니다. 이유는 모두가 짐작하다 시피 이 바구니에 자신의 전승기념물을 담으려고 하는것이죠. 사무라이들은 전투네 결투에서 승리한후 이 바구니에 적들의 머리와 코, 귀 등을 베어서 담기위해 이런 대바구니들을 가지고 다녔던 것입니다.

여기서 바구니에 담겨져 있던 머리나 귀, 코등의 갯수에 따라서 수 우 양 가 등으로 등급이 나뉘었는데 우리가 알고있는 수우미양가의 미만 빠진 수우양가의 평가방식이었습니다.

이런 수우미양가가 사무라이들의 평가방식이라고 하는 이유는 임진왜란때의 기록으로 살펴볼수 있습니다. "죽은자는 그 등급에 따라 머리를 베이거나 귀 혹은 코까지 잘리어 전리품으로 일본에 보내졌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의 증거로 임진왜란이 끝난후 에도 막부시대때 일본에서 쓰는 평가방식으로 우양가부 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 단어는 수와 미가 빠지고 부가 붙은 수우미양가 형식이죠.

그렇다면, 어쩌다 일본의 평가방식이 우리나라의 국민학교 평가방식이 되었던걸까요? 그건 일제 강점기때 우리에게 강제로 사용되던 평가방식이었으며, 이러한 방식은 해방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우리 스스로 미 를 덧붙여서 쓰게된 수우미양가 였던 것이죠.  

국민학교라는 명칭도 사실은 일본이 만들어준 말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꾸준한 지적을 받았고 1996년에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초등학교로 바뀌었죠. 그리고 조금더 지난후 수우미양가 역시 폐지 되었습니다. 

사무라이가 임진왜란때 우리 백성의 코와 귀와 목을 베며 평가하던 말들을 우리는 그 이유도 모른채 50년 이상을 사용하고 있었던거네요. 관계자들은 하루빨리 이렇게 남아있는 잔재가 더 없는지 잘 찾아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