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이유 히틀러는 왜 유대인을 증오하였나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이유와 증오한 이유에 대해서는 분분한 의견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의견들중 맞는것도 있고 틀린것도 있겠지만, 정확한건 그시대의  히틀러의 마음속을 정확하게 꽤뚫어 보기란 어려울거 같습니다. 다만 우리는 당시의 사건들 과 사회적인 분위기를 통해 그 사건들이 히틀러에게 미친 영향을 따저 볼수는 있습니다.  물론 2차 대전을 일으키고 대학살을 자행한 아돌프 히틀러에게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만, 당시에 유대인 역시 지탄받을만 했다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히틀러에게 영향을 끼친 사건들과 사회적상황 그로 인해 왜 히틀러가 유대인을 증오해서 학살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정세

1차 대전이 끝난후 독일은 대공황이 찾아왔습니다. 패전국으로서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함은 물론 전쟁으로 온 국민의 자존감은 땅에 떨어진 상태였죠.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독일내의  유대인들은 경제와 사회적인 측면에서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유대인은 독일 인구의 1%에 불과했는데 금융과 정치, 언론, 의료, 분야에서 상위 포식자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이유를 히틀러는 독일에 있는 유태인과 정치인들과 언론인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동조한 정치인들의 거대한 음모로 인해 독일군이 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1차세계대전에서의 결과는 독일의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가져다 주었고 함께했던 동맹국들역시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었죠. 하지만 이 시기에도 독일에 있는 유대인들은 많은 돈을 벌수있었습니다. 이유는 그들은 모든 직업의 상위포식자였기 때문이죠.

이러한 상황은 일자리가 없어 고군분투하고 있는 대다수의 독일국민들에게 유대인에 대한 비난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패전후의 상황때문만이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의 주요원인도 유대인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죠.

히틀러는 이런 독일사회의 반유대주의적 감정을 이용해 권력을 얻게 됩니다.  실제 그의 연설 대부분은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유대인의 종족특성을 깍아내리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습니다.


히틀러는 당시에 독일사회의 반유대주의적 감정을 이용하기 전부터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생각을 만인에게 공개할수있는 시기가 딱맞아 떨어졌던거죠. 히틀러가 나치당을 결성했을때 히틀러는 자신의 주장이 대중적인 지지를 얻을수 있는 희생양이 필요 했습니다. 그 희생양은 유대인이었고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의 연설은 사람들이 듣고싶어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히틀러가 가진 유대인에 대한 증오의 이유가 무엇이든 그에대한 결과는 홀로코스트의 공포로 남게 되었습니다.




히틀러의 어린시절

히틀러의 어머니 클라라(Lkara)는 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치료하던 의사는 유대인이었죠.  클라라가 앓고 있던 암은 전이성 유방암이었는데 클라라를 치료하던 유대인 의사가 권장하는 치료방법은 극심한 고통을 동반한 치료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1907년 히틀러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납니다.

 여기까지의 사실로 이때부터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을 증오였다라고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건 사실과 틀립니다.  클라라를 치료했던 유대인 의사 에두아르드 블로흐(Eduard Bloch) 의 자서전에 따르면

" 아돌프 히틀러는 어머니와 긴말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아돌프는 누구보다 큰 슬픔에 잠겼으며, 나는 어느 누구도 아돌프 히틀러처럼 큰 슬픔에 사로잡한 사람을 본적이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940년 히틀러는 이 유대인 의사에게 감사의 의미로 아내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하는것을 허용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을 증오하는 사건의 발단이라고 주장하지만, 의사의 자서전에 있는 문장은 그런 견해와 모순됩니다.


히틀러가 어렸을때 사랑한 첫사랑의 유대인 설과 어머니를 치료한 유대인 의사에서 부터 유대인을 증오하는 감정이 생겼다는 설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가 유대인을 증오하고 학살했던 이유는 1차대전이후부터 나타난 양상으로 보이며, 1차대전의 책임도 유대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그의 정치적 견해와 그가 정치적으로 기반을 다지게 해준 유대인차별성이 그를 유대인 차별자로 만든것이죠. 이건 제생각이니 틀린것일수도 있겠습니다.


당시에 히틀러가 유대인대학살 을 하게된 계기는 어쩌면 사회적분위기와 그가 가진 사상도 일조를 했지만 결정적인건은 따로 있었다고 생각듭니다.

1925년부터 1935년까지 스탈린이 수백만명의 대량학살을 한것을 독일정보국이 히틀러에게 보고하였는데  당시 소련의 공산당은 약 60명의 남자들에 의해 창설 되었는데 그중 40명이 유대인이었습니다. 스탈린은 공산당을 창설한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비밀경찰의 지휘권을 주고 반대파들을 숙청하기도 했죠. 아마도 히틀러는 이러한 과정과 사건들을 격으며 유대인대학살 즉 홀로코스트의 당위성을 스스로 만들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